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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 그려보일 필요는 없겠죠...? ”

그녀는 깨나 잘 사는 집안의 2남1녀중 세 번째. 여자가 적은 느낌에 낳은 떨이 같은 딸로 태어났으며 그 존재에 걸맞은 신세로 자랐다. 제대로 말하고 걸을 수 있을 시절부터 그녀는 여성의 몸가짐과 함께 걸레질을 배웠으며, 오빠들을 떠받드는 것이 당연한고 그렇지 않을 시엔 몰매와 질타를 맞으며 딸이 아닌 수습 하녀와 다를 바 없이 자랐다. 그녀를 조금도 귀하게 여기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도 토쿠무라의 성을 받은 자녀였기에 강제로 시킨 것이 발레였다. 어릴적 부터 꽤 괜찮은 몸을 가졌다고 봐온 그녀의 아버지가 정한 일 이였고, 그 누구도 그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떠밀려 간 그곳에서 그녀의 스승을 만났다. 그녀에게 유일하게 따스하게 웃어주었으며, 나긋한 말로 자신을 위로해주는 존재였다. 그렇게, 그녀는. 평생 모르는 편이 나앗을 지도 모르는 애정을 배워버리고 말았다. 자신을 믿어주는 이가 있는데 무얼 못했을까. 그녀의 발레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고 재능이 있었음에도 그녀는 그 어떤 범재와 재어도 밀리지 않을 만큼 연습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를 한 점 악의 없이 위하던 스승은 각종 대회에 그녀를 출마시키기 위해 부모님을 설득했고, 나가는 대신 최고가 되라는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다. 스승 덕에 처음으로 부모에게 선의의 기대까지 받아버린 그녀는 발등이 부서져도 춤을 멈출 수 없었다.  그 후 당연스럽게도 모든 대회에서 그녀는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고, 국내를 벗어난 세계대회 에서도 그녀의 빛을 지워지지 않았다.

 미소

 본디 천성이 그러했던 듯했다. 누군가를 제 시야에 담을 때면, 습관처럼 부드러운 웃음을 띄었다. 옅은 미소는 자연스러운 만큼 부담스럽지도 않았으며 늘 곱게 휜 눈가는 서글서글한 인상이 선했다. 특히 그녀의 목소리는 그 미소 어린 입술에서 나오는 만큼이나 아주 본 딴 듯 따스하기까지 했다. 그리 높지 않은, 마치 상냥함을 타고나기라도 한 듯한 음색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기이하게도 좀처럼 흔들리는 기색이 없었다. 굳건하게 지키는 여인상처럼, 항상 그러한 모습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감정을 품는지. 감히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주변 사람들은 그리 그녀를 평하곤 했다.

 

 

여유, 겸손

 여유로움. 딱 그녀를 표하는 단어였다. 어떤 일이 닥쳐와도 먼저 앞서는 법이 없었으며 그럼에도 뒤처지는 법도 없었다. 그래, 그녀를 바라보자면 마치 정도를 아는 이처럼 보였다. 한 두 걸음, 쉬엄쉬엄. 앙 투 투아. 누군가는 이 여유를 무섭다 하기도 했으며 누군가는 부럽다 칭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이 중심에 선 그녀는 흡사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언제나, 무엇이든, 여유롭게. 그러나 맡은 바는 완벽하게. 이런 그녀일 텐데. 평소 행동을 보자면 신기하게도 자신을 굽히는 것에 도가 튼 듯했다. 자신을 낮추고, 낮추고 또 낮췄기만 할 뿐이었다. 과분하다는 말이 입에서 떠나가지 않도록, 그녀는 자기 자신을 거의 헌신하다시피 떨어뜨리기만 했다.

 

 

지혜로운 방관자

 그녀는 나이에 비해 퍽 성숙했다. 간혹 문제가 일어났을 때, 취하는 행동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군더더기 없는 몸짓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손놀림. 머릿속에 도서관이라도 박아둔 걸까. 그녀는 잡다한 것부터 시작하여 전문지식까지 그 견식에 깊었고, 이는 간혹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언뜻 비추어지곤 했다. 허나 그녀는 어떤 질문에도 답을 제시해주지는 않았다. 상황, 경중에 상관없이. 그녀의 꾹 다물린 입술과 차분한 눈동자는 늘 침묵을 고집하는 듯했다. …이 속엔 어떠한 확신까지도. 하지만 천성이 상냥한 까닭에 그렇게까지 굳은 사람은 못 되었다. 그녀에게 캐내듯 질문을 반복한다면 혹시 몰랐다. 겨우 끄집어내듯 자신의 생각까지는 이야기할지도.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의견에 확신할 수 없어 불안해할 터였다. 확신할 수 없어. …그녀는, 자신을 그리 여기고 있었다.

 

상대를 위하는

 그녀는 상당히 낮음을 자처했다. 언제나 어떤 관계에도 상관없이 상대를 드높였고 어투 사이사이에 세심한 예절이 알알하게 콕콕 틀어박혀있기까지 했다. 특히 그녀는 너무도 당연하다시피 자신을 상대에게 자신을 바쳤다. 자신에게 있는 것들이라면 무엇이든지 상대에게 넘겨줄 의지가 다분했으며 이로 인한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마치 헌신을 위해, 헌신에 의해 태어난 이처럼. 이를 숙명이라도 된 듯 행동했다. 어쩌면, 자신의 희생마저도. 꽤나 운명적인 본새였다.

 

 

꼼꼼한

그녀는 습관적으로 적는 것이 몸에 밴 듯했다. 잠시 멈칫할 때면 품속에 가지고 다니는 자그마한 수첩을 꺼내 펜으로 무엇을 그리 적더니. 그제서 만족한 듯 수첩을 다시 품에 넣는 모습을 옆에 있노라면 많이 목격할 수 있었다. 아무리 사소하고 가치 희끗한 물건이라도 이리 꼼꼼한 그녀의 손을 떠난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주 작디작은 틈도 없는 태도였다. 자신이 소중하다 생각하는 물건은 특히, 꼭 자신만의 표식을 새겨 고이 남겨두곤 했다.

그녀는 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부모님과 위로 두 명의 오빠가 있다. 부모님은 금융업 쪽에서 일하신다고. 자세한 사항은 아무리 물어도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그녀는 아주 평범하고도 행복한 일상을 보냈다고.

 

그녀는 단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붉은색 토슈즈가 그려진 검은 수첩 , 만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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